[기업나라] 목표 세우기, 그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DUNA 2023.12.26 06:33:18

 


이스턴코퍼레이션 피터김 부회장


이민 1.5세대, 건설 현장 노동자로 시작해 30년여 만에 시공 능력 평가액 5,000억 원 규모의 종합건설사를 일군 주인공. 이스턴코퍼레이션 수장인 피터김 부회장에게 붙는 수식어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런 수식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근성 있게 밀고 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사업가였다.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그려나갈 꿈을 더 기대하게 되는, 그의 경영의 길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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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코퍼레이션 피터김 부회장이 최근 비즈니스 차 우리나라에 들렀다. 이스턴코퍼레이션은 1998년 자그마한 외장 전문 시공사로 출발해 25년여 만에 미국 상위 1% 규모로 성장한 종합건설사. 현재 미국 28개 주에서 건설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2,000개가 넘는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올랜도 시티 축구경기장, 선트러스트브레이브스 야구장 같은 스포츠 경기장을 비롯해 28개 주에 자리 잡은 주 정부 및 연방정부 건물, 1,000곳이 넘는 학교 건물 공사를 도맡아 수행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쇼핑몰 브릭켈 시티센터, 항공기 엔진 부품 제조사 롤스로이스의 크로스포인트 공장 역시 이곳 작품이다.

최근에는 한국지사를 통해 국내 건설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지사에서 한창 바쁜 그를 만났다. 첫인상이 인상적이었다. 훤칠한 키만큼이나 말투가 시원시원했으며, 어릴 때 한국을 떠났음에도 우리말이 유창해 막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얼마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열정적으로 사는지를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삶의 다른 모양이 잡히니 그대로 살아졌다

피터김 부회장은 스물한 살에 현장 노동자로 건설업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그는 군의관을 목표로 정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대학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갔어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의대 학비와 생활비 일부를 해결할 수 있는 군 장학금을 받으려고, 군의관이 되려고 했죠. 그런데 그즈음 형이 하던 사업이 잘 안 됐어요. 경제적으로 곤궁해지니까 부모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건설현장으로 나갔습니다.

” 미국은 적정 임금 제도가 있어 건설 현장 임금이 낮지 않았고, 현금을 매일 손에 쥘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는 건설 현장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1년 정도 지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사장을 비롯해 현장 인력 대다수가 영어에 서툰 이민 1세대였던 탓에 그가 현장 일 외에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책임지게 됐다. 1년이 3년이 되고 눈 깜짝할 새 5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점차 건설 현장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건설 현장은요, 이만큼 하면 저만치 끝이 보이고, 그걸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보람이 있습니다. 처음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성취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당시 학교 건물 공사를 주로 했는데, 건물이 번듯하게 올라간 걸 보면 성취감은 물론이고 교육계와 지역사회에 공헌한 느낌도 들었죠. 그게 참 좋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게 내 운명인가 싶기도 했고요.” 대학 공부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피터김 부회장의 말을 빌리면,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다른 모양으로 잡히니 또 그대로 살아졌다.” 그리고 업계에 발을 들인 지 8년여 만에 그는 외장 전문 시공사를 창업하게 된다. 1998년 이스턴코퍼레이션의 시작이었다.

“그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 모두 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했죠. 옐로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 지붕 섹션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전화하고 직접 찾아다니며 영업을 뛰었고, 일을 맡으면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어요.”

이스턴코퍼레이션은 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지붕 공사로 특화해 꾸준히 실적을 쌓아나갔다. 허리케인 등 궂은 날씨로 인해 지붕 공사가 잦은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태풍에 견딜 수 있는 메탈 루프 시공 등이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튼튼하고 정직하게 시공하는 업체라는 신뢰가 쌓였다. 그렇게 지붕에서 외벽으로, 모든 외장으로 사업 영역이 확장됐고, 노스캐롤라이나를 넘어 사업 지역도 하나둘씩 확대됐다.

 



Small Talk
우리말이 상당히 유창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를 대학 때 만나 연애했는데, 마음을 얻으려고 편지를 자주 썼다. 어휘력이 부족하니까 그때 수필집을 많이 읽으며 꽤 노력했다.(웃음) 덕분에 많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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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게 기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설 시장인 미국은 원칙에 입각한 투명한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최대 오픈마켓이라는 점에서 경쟁 또한 치열하다. 무엇보다 요구하는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 하루아침에 스타 기업이 탄생하는 예는 거의 없다. 바꿔 말하면, 기본에 충실하면 어느 회사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피터김 부회장은 이 같은 건설 시장의 특징이 오늘날 이스턴코퍼레이션을 만든 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어느 현장이건 어떤 프로젝트건 ‘사고 없이 안전하게 계약한 조건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빠르게 대응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해결해가는 게 경쟁력이죠. 그런 일들이 하나둘 쌓여서 원도급이나 발주처로부터 인정받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피터김 부회장은 그간 진행한 2,000여 개 프로젝트 중에서 한 번도 완료하지 못한 현장이 없다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수익률이 낮다거나 손실을 볼 것 같다거나 혹은 시공 능력이 부족하거나 공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사로서 어떤 현장이든 완공하는 게 기본이자 최고의 영예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2019년부터 시작된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프로젝트는 이스턴코퍼레이션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약 3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는 당시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큰 경제개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당시 우리의 시공 능력 평가액이 1,000억 원 규모였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일단 해보겠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죠. 더욱이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잖아요. 당시 현장에서 1,000명이 넘게 일하고 있는데 그중 누구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2주 동안 현장을 셧다운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체 인원이 검사받고 통과하면 일을 시작했죠. 그러기를 반복했습니다. 수익은 둘째치고, 공기를 맞출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 날도 많았습니다. 너무 걱정되니까 잠도 오지 않더라고요.” 이 같은 악조건에도 이스턴코퍼레이션은 2021년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피터김 부회장은 자사 모토가 ‘Nevertheless, Make it Happen!(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다)’라는 걸 강조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덕분에 어떤 일도 해내는 기업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게 됐다. 5,000억 원 규모의 보증보험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게 대표적이다. 보증보험은 회사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미국에서는 유명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보증보험을 발급받아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입찰 회사의 재정적 능력과 공사 관련 시공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은 철저한 신용사회입니다.

꾸준히 실적을 관리하고 발주처 사업에 대해 충분한 기술적 지원을 통해 우수한 레퍼런스를 확보하며 믿음을 쌓는 것이 최선입니다. 믿음을 심어주는 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죠. 악조건 속에서 맡은 바를 성실히 그리고 완벽하게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그전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됐습니다.” 이 같은 신뢰가 쌓여 이스턴코퍼레이션은 현재 미국 내 50개 1군 건설사의 파트너사로 자리를 잡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공사에 입찰 요청을 받고 있다. 피터김 부회장은 성장의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제가 인복이 많습니다.

CEO로서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시다시피 모든 일을 제가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직원들이 저와 함께 일하면서 매니저로 성장하고 한 파트를 맡으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됐죠. 그들이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기에 오늘날 이스턴코퍼레이션이 있는 겁니다.”



Small Talk
우리말이 상당히 유창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를 대학 때 만나 연애했는데, 마음을 얻으려고 편지를 자주 썼다. 어휘력이 부족하니까 그때 수필집을 많이 읽으며 꽤 노력했다.(웃음) 덕분에 많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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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세우면 꿈을 향한 길이 열린다

현재 이스턴코퍼레이션은 건설 외에 금융, 무역, 건자재 수출입, 태양광, 클린룸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데 정한 규칙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기회가 찾아오면 어떤 도전도 주저하지 않는 게 기준이자 원칙이다. 피터김 부회장은 이처럼 기업의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내부적으로 기업문화를 다지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특별히 ‘배려’라는 키워드를 강조해왔다. 가령 늦게까지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누구라도 먼저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하고 팔을 걷어붙여야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미국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냐는 기자의 우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할 줄 압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래요. 부를 축적하면 사회에 기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피터김 부회장은 오늘날 이스턴코퍼레이션을 일구기까지 순간순간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왔다. 건설 현장에 첫발을 들였을 때는 현장 소장이 되기를 소망했고, 목표를 이룬 후에는 사장이 되겠다고 계획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회사를 더 크게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저는 항상 계획을 먼저 세웠습니다. 큰 계획을 세우고 그 아래 다시 세부 계획을 세우죠. 그런 후에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향해 달립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또 다음 목표를 세워야 하고요.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길이 열리고, 길이 열리면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았단다. 그의 말을 빌리면, 49% 실패하더라도 51% 성공함으로써 딱 2%만큼 전진할 수 있다는 것. 피터김 부회장은 최근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한국지사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미국 건설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게 그중 하나다. 또한 세계적으로 품질이 우수한 국내 건설자재를 수출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도 구체화했다. “언젠가 저희 직원들과 함께 ‘이스턴’이란 이름을 가진 스타디움을 짓고 프로 구단을 갖자고 얘기했습니다. 그곳에서 풋볼도 하고 메이저 야구도 즐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신나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서 제 다음 목표는 1군 건설사가 되는 겁니다.”

누군가 그랬다. 목표는 명사로, 꿈은 동사로 표현한다고. 무언가가 되겠다는 게 목표라면 무언가를 이루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게 꿈이기 때문이다. 피터김 부회장은 ‘1군 건설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직원들과 더불어 행복할 그날’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모토도 다시 정했다. ‘Together, We Make it Happen!’ 이들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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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모델이 있나.
당연히 있다. 유명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다. 우리 집안의 막내 외삼촌을 존경하고 닮고 싶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대에 미국으로 먼저 건너가 백악관에서 일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셨다. 남을 배려하는 인자함이 몸에 배어 있고 생각이 활짝 열려 있다. 언제 봐도 나무처럼 한결같은 분이다. 그런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다.

 


 

 

글 이은정 | 사진 김윤해